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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홀]D+425~429, 무념무상 잉여의 몸짓 본문

14-15 호주 워킹홀리데이 /Second

[호주 워홀]D+425~429, 무념무상 잉여의 몸짓

Yildiz 2015. 10. 19. 01:25

 

 

 

 

 

 

루앙프라방에서 며칠 지낼 때, 자주 찾아가던 국수집네 개.

무슨 생각인지 바닥에 철퍼덕 드러앉아 지나가는 차를 구경하는 건지

사람을 구경하는 건지, 바퀴를 구경하는 건지. 뭔지.

 

그저, '내 세상이로구나' 싶은 잉여로움의 자태가

인상적이었다.

 

 

Photo by Hesher @ Luangprabang, Laos, March, 2015

 

 

 

 

(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2주간 감기로 골골 대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소세지 공장을 그만 둔지도 벌써 한 달하고 5일이 지났다. 샐러드 공장과 연결된 에이전시에서 늦어도 10월 초에 연락 올걸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벌써 10월의 반토막이 지나갔다. 일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지고, 완전 거지가 될 것 같은 걱정은 이미 졸업을 했나보다. 아직 통장에 잔고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은 없다. 이렇게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만약 내년 4월에 발리에 가서는??

 

그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구상은 샐러드 공장에서 6개월을 꽉 채워서 일하고 호주를 떠나는 거였다. 뭐,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기대했던 대로 돈을 많이 못 모아가더라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남친이나 나나, 돈을 펑펑 쓰지도 않고,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니니 우리에게 필요한 적정의 돈은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은 할테니까.

 

게다가 호주를 떠나기 전에 조기 택스 환급을 받으면, 그것도 꽤 쏠쏠하다. 14년 7월부터 -15년 6월까지의 일한 내역을 택스 환급 신청해서 받은 것만 해도 1955불 정도 받았다. 원화로 약 160만원 정도 된다. 한국에서 연말정산 하는 것도 잘 모르고 어려워 하는데, 호주에 와서 고작 1년 안되게 일하며 세금 낸 것을 직접, 인터넷 검색하고 뭐하고 해서 신청해서 받았었다.

 

이 나라는 외국에서 온 노동자의 세금을 고스란히 환급해준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진 이들의 세금 환급이 안되다고 하니, 법안이 어찌 통과되고 언제부터 정확히 효력이 발휘할지는 나중에 가봐야 알겠지만, 내가 호주에서 게으르게 지내며 빨 수 있는 꿀은 어느 정도 핧아먹고 떠나는게 아닌가 싶다.

 

택스 환급으로 들어온 돈도 돈이지만, 내 이름으로 들어간 연금을 돌려받는다면, 그것 또한 쏠쏠할 것 같다.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돈 벌지 않아도 된다- 고 생각하기 보다는

 

 

아직 돈을 벌고 싶지 않다. 라는 상태다.

 

 

2주 전에 핫요가에 갔다가 감기기운을 얻어 왔다. 핫요가가 나에게 버거운 건지, 아니면 감기 바이러스를 누군가 내게 전해주고 갔던 건지. 요가를 하는 중간에 이상하게 어지러워서 잠시 쉬어야 했었다. 요가 시작 전부터 내 몸 상태가 별로였는지도 모른다. 게으르게 일어나 시작한 하루에, 게으르게 인스턴트 라면을 먹고 나서는 몸이 찌뿌둥하고, 심각하게 아플 징조를 느끼게 되었다.

 

잉여의 몸짓으로 한달 넘짓 살아오니, 감기도 잉여의 자태로 점점 심해져갔다. 인천에서 지낼 때, 감기에 걸리면 정말 심한 기침을 했었어서, 천식이 아닌가 싶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다행히 천식도, 폐렴도 아니었지만, 아랫목이 간질간질 하면서 딸꾹질처럼 멈추기 힘든 기침을 하곤 했다.

 

그 감기를 이번에 호주에서 겪었다. 한국에서 마땅히 가져온 감기약이 없었고, 잉여의 몸짓대로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쉽게 낫질 않았다. 좀 괜찮아졌나 싶어서 간만에 미용실로 외출을 했었는데, 에어컨 바람이 내 아랫목을 간질간질 거려 머리를 자르는 도중에도 기침을 애써 참아야 했다.

 

남자친구가 마트에서 사다준 감기 약이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약국에 가서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추천받았다. 한국의 약국과 달리, 약 값이 비싸다. 한국에서는 한 4,5천원 하는 약이 여기에서는 거의 2배 가격이다.

 

약이 독한 기운이 있어서 새벽에 끙끙 앓지도 않고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약을 3번 먹어봤는데, 이제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한 달 전에 줌 에이전시 직원이 3시 50분 경에 우리에게 전화를 했었어서, 오후 시간대가 되면 혹시가 전화가 올까봐 핸드폰을 어디를 가든 갖고 다녔다. 하지만 이젠 그 시간에 대한 감각도, 에이전시의 존재감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자포자기... 의 수준이라기 보다는. 한 차례 지독한 감기를 겪고 나서, 그 기운을 털고 일어나기엔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아이고, 의미가 없다? (X), 의미가 있다. (0)

 

 

요즘 읽고 있는 책 [예능력]에 이런 말이 나온다.

 

 

... 요새 '잉여' 라는 말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자조적으로 자신들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의무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잉여의 시간과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 제약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잉여의 사고는 틀에서 벗어난 발상을 하게 한다. 한가로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의미나 목적의식, 효율성은 제쳐 두고 유람하듯이 시간을 보낼 때 새로운 창조와 혁신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잉여'라는 말은 다시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

 

이 세상에 쓸데없는 짓은 없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그래 보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의미를 찾으려 하고, 효율성을 따지고, 주어진 문제에서 100점을 받으려고만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동할 때 빈둥거리고,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시간을 낭비해보자. 빡빡하게 짠 시간표와 공정표대로 사는 인생은 참으로 재미없다.

 

 

  - 책 [예능력], by 하지현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쓸데없는 것 같고,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도 영양가 없는 일이라 생각해왔었다. 해야할 일들도 많은데, 그런데 시간을 보내는데 아깝고 의미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성과에 대한 욕망과 앞다투는 경쟁의 상태가 아닌 그런 것들을 모두 비우는 잉여의 상태. 

감기와 함께 일하지 않는 비싼 휴식, 치열하게 일할 날들을 대비해 충전하는 중이다.

 

 

 

(2015년 10월 18일 일요일)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한 달전에 줌 에이전시에 가서 직원에게 얼굴 도장 찍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 달... 그러니까 한 달이 지난거니까. 금요일에 다녀와봤다. 직원이 우리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Hopefully! 라는 단어를 쓰며 그녀 자신도 공장으로부터 소식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빠르면 다음주, 아니면 2주 내에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집에서 25분이나 떨어져있는 에어전시에 다녀오는 길에 차 안에서 노래를 지어 불렀었다.

 

감기기운도 어느 정도 떨어져가는지, 이젠 공장 일이 들어와도 적극적으로 일할 준비가... 음... 아직까진 60% 이지만.

차차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일이 이제 생겨도 좋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이건 주문이다. 아브라카다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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