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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영화수다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Yildiz 2014. 7. 21. 19:09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2014)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7.5
감독
맷 리브스
출연
앤디 서키스, 게리 올드만, 제이슨 클라크, 주디 그리어, 케리 러셀
정보
SF, 액션, 드라마, 스릴러 | 미국 | 130 분 | 2014-07-10

 

 

 

(영화의 결말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아직 안 보신 분은 읽지 마세욤. ^^;)

 

 

 

 

 

 

 

 

#1편을 꼭 챙겨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던 2편, 반격의 서막

 

너도 나도 재밌다는 평이 있어서 혹성탈출 1편을 보지 않고 성급하게 2편을 보러 갔다. 같이 영화를 보러간 남자친구가 필요한 부분은 설명해주어서 그때그때 이해할 수 있었다. 헐리우드의 스케일이 큰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이, 군더더기는 과감히 빼면서, 필요한 대사와 장면들은 필요한 부분에 꼼꼼이 챙겨넣는 뛰어난 편집 기술로 1편을 보지 않았어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아무래도 1편을 보고 2편을 보는게 더 흥미롭긴 하겠지만, 빨리 보고 싶다는 조급함이 앞선다면 꼭 1편을 먼저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영화 첫 장면에 화면 가득 나오는 유인원들이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과연 내가 주인공을 제대로 분간할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어지긴 했었다. 하지만 유인원의 우두머리인 시저, 시저의 아들(곰의 공격으로 인해 가슴에 상처가 생겼다.), 인간에게 갖은 생체실험을 당했던 과거를 가진 코바, 그리고 덩치 큰 갈색의 오랑우탄이라해야하나(이름을 찾아보니 모리스)등 주요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자주 보게 되니 파악이 금방 되었다.

 

 

 

#갈등의 연속, 긴장감을 극으로 몰아가는 장면들과 배우들의 연기는 갑!


우선, 시나리오 구성에 대해 감탄했다. 갈등 상황을 몰아가고, 그것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피로감을 느낄만 했을 때. 다행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장면 또한 빼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몰입을 위해 뇌회로를 쥐었나 놨다 손아귀에 꽉 잡힌 기분을 들게 했다.

 

거기다 배우들의 연기는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도록 관객들을 극중 상황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유인원의 리더 시저 -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역을 맡은 배우가 역할을 맡았다.

 

 

 

인간을 극도로 싫어하는 코바.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결국 그의 광기를 지배하고 말았다.

 

 

 

긴 런닝타임동안 게리 올드만이 나오는 장면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인상깊다.

 

 

 

 

#우리는 자신이 믿는 것만 보며 살아가게 된다.

 

영화 속 갈등이 이완된 장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시저의 갓 태어난 아이가 인간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는 장면과 말콤의 아들이 덩치 큰 갈색 유인원과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말이 잘 통하지는 않지만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이 있다. 긴박함과 갈등이 사라진 이 장면들을 보며 그나마 안심과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인간과 유인원이 서로에 대한 오해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고 볼 수 있겠다. 서로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갓 태어난 유인원과 감정의 불순물이 많이 쌓이지 않은 어린아이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유인원. 생김새는 달라도 공감하고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 대한 경계를 풀고 믿음을 쌓아가나 싶었지만 유인원의 집에 '총'은 용납할 수 없다는 시저의 말을 거역한 한 인간의 총이 들통나자, 인간들은 그곳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우리는 부정적 감정과 마음가짐, 믿음을 어마어마하게 쌓아 둔 저장소를 지고 다닌다. 여기에 압력이 쌓일수록 괴롭기 그지 없고, 병이 생기며, 잦은 문제가 생긴다.

(중략) 면밀히 살펴보면 인생이란 본디 마음속에서 겁내거나 기대하는 바를 투사해 세상에 덮어씌우고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긴 시간 동안 이리저리 애쓰는 일이다.

-p.33 <놓아버림>, 데이비드 호킨스


세상을 살아가는 세월만큼 개개인의 마음 속에 쌓아둔 감정의 찌꺼기들이 어떤 것들인지에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상대를 만나더라도 판단하는 관점이 저마다 다를 것이다. '인간'에 대해 도무지 좋은 점이라곤 찾을 수 없었던 '코바'는 유인원들이 인간들을 믿어서는 안되는 점을 찾아냈다. '인간'과 긍정적인 교감을 경험한 적이 있는 '시저'는 인간을 믿을 수 있는 면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인간에 대한 증오심과 불신을 용납할 수 없었던 코바는 더 이상 인간을 그대로 둘 수 없기에 멸종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무기고에 가서 총을 탈취하고 시저에게 총을 쏘고, 유인원들을 큰 혼란에 빠뜨린다.


 

 

 

'인간들이 시저를 죽였다.'로 적을 인간으로 두고 복수를 위해 코바는 선제공격을 감행한다. 시저의 공백을 자신의 존재로 대신한 코바는 인간을 한 곳에 가둬놓고, 인간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시저가 죽었어도, 그의 말을 따르던 한 충복은 코바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만다.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코바 자신을 온통 차지하여 결국엔 그 자신 또한 그를 학대했던 인간의 추악한 모습과 똑같아지고 말았다.

 


 

#과거의 감정을 사는 자 vs 현재의 감정을 사는 자

 

영화 포스터만 보면, 진화한 유인원이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비춰진다. 하지만 유인원이란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동물'에 속하는 존재를 빌려다가 인간 사회를 풍자하는 '우화'같은 이야기로 여겨진다.

 

증오의 광기에 휩쓸린 코바가 총을 든 채 불꽃을 헤치며 말을 타는 장면은, 그냥 볼거리로만 생각되지 않았다. 분명 코바는 영화속에서 유인원이지만, 코바같은 현실세계의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고, 지금도 세계 어디선가, 이땅의 어디에선가 '적'을 향해 분노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인간에게서 느꼈던 증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코바와 달리, 리더 시저는 균형감을 잃지 않는 감정을 갖고 있었다. 분명 인간이 유인원에게 했던 잘못된 과거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나쁘지는 않다는 것과 무조건적으로 인간을 믿지는 않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시저였다. 유인원의 리더라는 점 그리고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점에서 그는 현재를 살고, 미래를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저와 말콤의 닮은 점은 '나만의 미래'가 아닌 '누군가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 밖의 것들에 대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미래'가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랜 감정과 선입견이 현재의 선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닌, 현재가 그리고 현재의 선택이 낳을 미래가 그들에겐 중요했다.

 


 

#우리의 적과 나는 닮아있다.

 

영화가 주는 흥미와 재미, 볼거리가 좋으니 흥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데 재미난 오락거리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영화가 마치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과연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시저가 자주 하는 말이었던,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 는 즉.

유인원은 인간처럼 자신의 욕심을 위해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유인원은 인간과 다르다. 라는 믿음에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코바의 싸움에서 시저는 코바를 죽이고 만다. 유인원이 유인원을 죽였다.

시저는 받아들인 것이다. 유인원과 인간은 별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힘쎈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자기를 위해서라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악함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시저는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니 이미 시작된 싸움 또한 피할 길이 없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평화가 지속되길 기대했던 시저이지만, 엎지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는 현실 또한 부인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큰 갈등 구조가 인간 대 유인원이었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적대적 갈등 구조와 너무도 닮아있다. 영화가 끝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무차별 공격 중인 이스라엘 군이다. 팔레스타인의 민간인들 특히 힘없는 아이들이 폭탄에 맞아 사망하는 일을 두고, 과연 그들의 적은 누구인가, 묻고 싶다.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는 것을 구경하며 박수치는 이스라엘 사람들. 연사되는 총을 들고 갖은 살기를 뿜어대던 코바와 이들이 전혀 다를바 없어보인다. 적을 경멸하다 보면 자신 또한 그 적과 닮아가게 되고, 스스로를 파괴하게 만든다. 경멸의 감정에 허우적대다 겪게 되는 최후의 모습을, 우리는 영화 속 코바를 통해 볼 수 있지 않는가.

 

 

 

#'당신과 나는 다르지 않다.'를 전제로 두고 

 

1) 새누리당 2012 대선 선거운동 문자


 

 

종북좌파, 불순세력, 흑색선전, 합리적인 국민. 어마어마한 위기에 처한 상황인듯 다급해 보이는 문자 속에서

합리적인 국민이 누구이고, 흑색선전은 또 무엇인지를 묻게 된다.

 

 

2) 세월호 유족 단식농성하는 광화문 앞에서 농성을 벌인 '엄마부대봉사단' 대표 주옥순 대표 (대구대 복지학과 교수가 아니라는 대학측 입장표명이 있었음)

 


 

 

혹성탈출 영화를 보고 나서 조심스러워진 것은 섣불리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당신'과 나는 다르다. 가 아닌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다. 라는 것을 우선 전제로 두고,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판단들로 정신이 단단해져있는지도 살펴본다.

 

적을 없애기 위해 섣불리 행동하다가는 나 또한 그 적의 모습으로 어느 순간 변해간다. 모든 문제와 해결책은 '적'이라는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적'을 대면하고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시저를 통해 배운다.

 

코바를 따라 총을 들고 인간의 집으로 쳐들어가던 유인원들과 다를바 없는 우리 인간들이다.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선택하기 보다는 누군가가 말하는 '적'의 존재를 그대로 믿고, 적을 경멸하기 시작한다. 실제 '적'이 어떤 형체와 모습을 갖고 있는지 모른채 말이다.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을 수록, 그것을 부인 할수록 우리가 만든 적의 허상을 닮아가게 된다.

 

'적과 나는 애초에 다르다'에서 출발하는 경멸은 결국 원래의 내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순간순간의 깨어있음과 자기 성찰만이 적에게서 작별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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