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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Searching for

#Escape yourself

Yildiz 2014. 3. 30. 07:01



@Udaipur, Rajasthan, India, 2013





<한 남자의 이야기>

미스터 인도씨는 심플한 디자인의 티셔츠를 좋아한다. 집에는 왠만한 기본 색상들의 티셔츠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인도씨가 가장 좋아하는 티셔츠는 검정색 바탕에 영어로 "Same same" 이라고 적힌 것이다. 단순한 말이지만 쉽게 잊곤 하는 것들에 대해 그는 티셔츠에 적힌 문구들이 그 자신에게도 큰 감흥을 준다고 생각한다. 짧고 굵게. 단순하면서도 생각들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좋은 것이다.

한번은 그는 맙사에 있는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한 장 골랐다.
"Escape yourself" 단순하면서도 의미가 있는 말이다. 검정색, 파랑색, 분홍색의 색상 중 고민을 거듭하다 분홍색 티셔츠로 골랐다. 자신의 초콜렛 색상의 피부와 분홍색의 조합을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인도씨가 하는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그날 입을 옷을 고르는 일이다. 3월에 들어서면서부터 낮동안의 햇살이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는 시기엔 오후 2시까지 입는 티셔츠와 2시 이후에 입을 티셔츠를 골라놓는다. 혹시 있을 외출에 대비해 그날 기분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은 왜인지 그는 분홍색 옷이 입고 싶어졌다. 후덥지근하게 불어오는 해풍에 소금기가 걷힐 만한 색상이기 때문이다. 아람볼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잡아타는 일은 늘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다. 운 좋으면 자리에 앉을 수 있고, 그나마 운이 덜하다면 조금 덜 붐비는 버스에서 서서 가겠지.

마침 저기서 버스가 오고 있다.



<한 여자의 이야기>

미스 코리양은 인도에서 3주째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두번째 인도 여행이라지만 긴장감이 처음보다 살짝 덜할 뿐, 걱정되는 일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뭘 더 알려고도, 더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당장은 조용히 쉬고 싶은 기분만 든다.

여행자들의 숙소가 몰려있는 골목을 지날 때 별별 단어를 섞어가며 말을 내뱉는 장사꾼들의 행위 하나하나가 다 못 미덥다. "Hello, my friend." 라고 말을 거는 남자들의 추근덕댐은 꼴불견이지만 더 짜증나는 것은 눈웃음으로 실실 쪼개면서 쳐다보는 능글거림이다. 저것들을 그냥 콱.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사소한 짜증들을 하나 하나 담아뒀다가 바닷물에 들어가 파도의 일렁임에 몸을 맡기다보면 금세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아지면서도 예민해진 그녀의 성미를 스스로 다스리기가 힘든 노릇이다.

어제는 인도 전역의 최대 축제인 '홀리' 였다. 색색의 가루를 남녀 구별할 것 없이 몸에 던지고, 색색깔의 가루로 얼룩이 덜룩이가 된 사람들은 그것을 깨끗이 씻어낸다. 아람볼 해변에 온 인도 여행객이며, 외국 여행객이며 바다에 들어가서 말끔한 제 모습을 다시 찾기 위해 열심히 씻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아람볼 해변에서 맞이하는 홀리는 그닥 축제 같은 기분이 들지가 않았다. 인도인들의 축제라는 느낌보단 관광객들이 얼마나 색색의 가루를 얼굴과 티셔츠에 범벅했는지에 대해 자랑하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고나 할까. 무튼 그녀의 심기는 이전부터 꽈배기처럼 베베 꼬여있었으니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이었으리라.

집시의 아이들과 아줌마들은 관광객들에게 색 파우더를 묻혀주고 돈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축제라는 기분보단 덜 익은 감을 한입 베어먹는 맛이었다.

'그래, 여기는 '여행' 의 느낌이라기 보단 '관광' 이라는 느낌을 주는 그런 인도 여행지이니까.'
그녀는 심기불편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어본다. 사람들과 부딪침보다는 바다와 태양과 밤의 달과 한적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의지하고 싶은 시간을 원해서 이러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느 시인이 '인도의 홀리를 진정으로 즐기지 않는자는 인도를 제대로 본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허풍같이 느껴져서 거슬린다. 아니, 인도에 왔다고 와서 꼭 홀리를 즐겁게 즐겨야만 하는건가? 싶으면서도 너무 마음을 닫고 있나? 여행을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녀의 생각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젯밤엔 그녀는 괜히 또, 괜시리 우울해졌다. 안녕하세요, 스무살 청춘. 잘 살고 있는건가요. 내가 가진 능력을 백분의 일은 활용해서 살고 있나요. 라는 질문에 미스 코리양은 12시간은 족히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 지쳐있었다.

오늘은 그녀가 이곳 고아를 떠나 뭄바이로 가는 날이다. 아람볼에서 가까운 큰 도시 맙사로 가기 위해서 그녀는 숙소에서부터 배낭과 카메라 가방을 메고 30분 이상 걸어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막 맙사로 출발하려는 버스가 있어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운 좋게도 얼마 되지 않아 여성 좌석에 앉아서 가게 되었다.

심기 불편한 그녀의 마음은 같은 버스를 탄 여자 외국인들의 차림새를 보며 그녀 자신의 차림새와 비교하기 시작한다.

왜 작년에 인도에서 샀던 스카프 중에 그 어느 하나도 가져오지 않은 걸까.
왜 작년에 인도에서 샀던 긴 치마는 한번도 입지 않다가 필요할 때 가져오지 않은 걸까. 라며 자신을 탓하면서.

팍팍한 낮의 열기 아래 달리는 버스 안에서 후덥지근한 바람과 인도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간간이 그녀의 뺨을 훓고 지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빵빵 거리며 쌩쌩 달리는 인도의 버스는 손님들을 태우고 내려주면서 부산스럽게 목적지를 향해 가는 중이다.

그러다 그녀는 어느 한 버스정류장에서
마침 버스에 올라탄 한 남성의 옷을 무심코 바라보고는 피씩 웃는다. 핑크색 티셔츠다. 연한 색상의 옷이 마음에 든다. 거기다 옷에 적힌 문구.

"Escape Yourself"

스스로에게서 벗어나기.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단순한 문장이 그녀의 머리를 쾅 때린다. 복잡하고 얽기고 설킨 그녀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걸 그녀도 알지만 쉽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한 남성의 옷에서 발견한 글은 '제발 좀' 정신차리라는 누군가의 간절한 메세지처럼 느껴졌다.

생각에서 벗어나기. 스스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일이지만, 너무 자기 생각에 몰입하는 것은 주변에 있는 흥미로운 것들로부터 자신을 너무 과잉보호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가 여행하는 중에 필요한 조언들은 누군가의 옷에 적힌 간단한 문장을 통해 종종 얻는다.
이렇게 받은 메세지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메세지는 또한 누군가에게로 흘러가리라.


앞으로 남은 여행의 나날들만큼, 순간 순간마다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녀는 나즉이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Escape yourself,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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