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힘내자, 청춘!

#아무것도 아닐 이야기 본문

2014 Searching for

#아무것도 아닐 이야기

Yildiz 2014. 3. 27. 19:43




@Udaipur, Rajasthan, India, 2013





<나의 기록에 대하여>

여행을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 딱히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잘하고 있기도 하고, 못하고 있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큰 사고 없이, 별 탈 없이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으니 나쁘지 않다고 괜찮다며 말해야하겠다.

가이드북을 들고, 남들이 가는 곳, 남들이 묵는 곳에 발품팔기 보다는
낮잠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마음껏 먹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성수기를 지나, 3월에 들어서면서 날씨도 더워지기 시작한 인도는 처음 마주했던 모습보다 더 끈적한 느낌이다. 인도 남부 코치로 들어와 북쪽 지방인 라자스탄까지 올라왔지만, 내가 지금 있는 푸쉬카르도 한낮의 태양은 뜨겁다. 밤에는 적당히 바람이 불어오지만, 한낮의 열기는 뭄바이와 같은 대도시와는 또 다른 사막 같은 느낌의 후덥지근함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늦춘다.

익숙하지 않는 날씨탓을 하며 인도북부의 작은 마을로 온 나는 무작정 게을러진다.
그래도 조금씩 딩딩당당 거리는 기타를 만지작 거리고, 빨래를 하고, 뜨거운 물을 받아 기분 좋은 샤워도 한다. 지금 머무는 방의 난간없는 테라스로 나가면 옆방에 묵고 있는 엄마와 함께 여행온 꼬마아이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먼저 반가워하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해가 조금 기울어져 건물 사이사이로 그림자를 만들어낼 때, 느적느적 밖으로 나가 길거리의 오토바이와 소와 개와 소똥을. 그리고 헬로, 재팬, 코레아. 라며 환심을 사보려 말을 거는 사람들을 지나쳐서 호수로 향한다.

호수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곳이 주는. 그 순간이 주는 유일함과 아름다움을 만끽하다보면 하늘이 어둑어둑해진다.

내가 어디에 갔고, 어디에서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좋은 것을 먹는지 일일이 사진을 찍어 자랑하듯 여행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다. 음, 맞지 않다는 표현보다는 게을러서 그렇단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년에 인도에 와서 찍은 사진들과 매일의 경험에서 얻게 되는 생각들을 잘 정리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런 필요성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내가 꾸준히 하지 않은 것 중에 하나다. 지금도 여러 생각들이 얽혀있어 어떻게 풀어써야 하나 싶지만, 너무 완벽하게 무언가 하려는 성격때문에 조심스러운 것도 없지 않다.

나의 이야기가 아무것도 아닐 이야기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잘난 것도, 그렇게 내세울 것도,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 이야기가 거추장스럽지는 않을까. 너무 배부른 이야기는 아닐까. 그런 생각.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영양가없고 불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쓰면 될 것을.

무언가 기록을 하되, 꾸밈없이 적고 싶다. 가끔은 오바스러움을, 가끔은 침울함을 오가는 들쑥날쑥 항해하는 난파선 같을진 모르겠지만 뭐라도 적다보면 어깨에 잔뜩 들어가있는 긴장도 풀어지고, 자꾸 되풀이되는 나의 허점 또한 스스로 간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본다는 것. 그게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알아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 같다. 이왕이면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를 어제와는 아주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성공한 것이라고 자화자찬을 해주고 싶다.

살짝쿵 우울하고, 왠지 모를 허망함을 조금 달래기 위해 읽으면 좋을만한 소설이 있다. 최근에 나온 더글라스 케네디의 [파이브 데이즈] 라는 소설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나의 감정이 딱 이 소설에 담긴 것들과 비슷하여 많은 부분들을 공감하며 읽었었다. 기억에 남는 글귀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p.362
도시를 가로질러 유구히 흐르는 강물에 비하자면
이 도시에 살았던 개개인의 이야기들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아.
다만 그들이 살았던 이야기는 모두 다 진실이야.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았더라도
하찮은 이야기는 없기 때문이지. 우리네 인생은 하나하나가 각각 한 편의 소설이거든.
우리는 소설을 본인 의지대로 써나가기보다 소설 속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변화되고 마무리 되는지 주변에서 들은 대로 받아쓰기할 때가 너무 많아.


나의 이야기가 '아무것도 아닐 이야기' 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야기' 일거라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소설에서 만난 구절은 든든한 힘이 된다. 우리네 인생의 하나하나가 각 한편의 소설이고, 나도 그 소설을 써내려가고 있다고. 나의 기록을 써내려가면서 이게 정말 나의 이야기인지, 주변에서 들은대로 받아쓰기를 하고 있진 않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싶어졌다.

이왕이면 나의 이야기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늘 즐거움으로 가득 찰 순 없겠지만, 허황과 질투와 쓸데없는 시기심과 이기심, 너무 많이 가짐으로 인한 우울과 욕심으로 부풀어오른 풍선의 바람이 딱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만큼만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예상치 못하게 맞딱뜨린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두려움 이면의 좋은 것들을 또한 담고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p.363
'우울한 세계관에 무릎 꿇지 말아요. 인생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으니까.'


위의 책 구절은 읽으면 읽을 수록 힘이 된다. 나도 당장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모르니까.
낙담을 하더라도 스스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만큼의 낙담과
누군가 또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그런 글을 쓰고, 그런 내가 되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아닐 이야기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2014 Searching for' 카테고리의 다른 글

Out of India  (0) 2014.04.06
#Escape yourself  (3) 2014.03.30
Sleepless nights in Mumbai  (0) 2014.03.25
I am in Arambol, India  (0) 2014.03.16
두 번의 밤  (0) 2014.03.1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