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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5] 순례 4일째, 이어지는 특별한 만남들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5] 순례 4일째, 이어지는 특별한 만남들

Yildiz 2009. 4. 24. 14:16
당신은 삶의 어떤 면을 바라보며 살고 있나요? 2008년 5월 27일 화요일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났다. 방 안 가득 내려앉은 고요함을 깨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은 어두운 새벽. 어제는 마르코스와 죨드랑 함께 걸었는데, 오늘은 혼자 걷는다. 


어제는 일출을 봤는데, 오늘은 날이 너무 흐려 빈틈으로 새어나오는 빛만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산을 오르면 오를 수록, 마을을 뒤덮은 안개는 하얀 바다처럼 보인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왠지 신비롭다.


가끔은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내가 밟아온 길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막상 걸을 땐 미처 깨닫지 못했던 큰 전경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볼 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너무도 아름다워 좀 더 머무르고 싶을 때. 마음에 꾹꾹 담아놓아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까미노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십자가. 꼬불꼬불 난 산 길을 따라


어제 무리하게 걸은데다, 배낭 매고 오래 걷는게 아직도 적응이 덜 된 탓에 몸이 힘들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진 않는다.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는다.

Cizur Menor 에서 보였던 산 정상의 하얀 풍차들. 산을 올라가면 갈수록 그 크기가 실제로 다가온다. 정상에 도착해서는 무섭게 보이기까지 하다.
여기가 페르돈 고개!

순례자를 상징하는 형상


중세시대에는 이 곳에 작은 성당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회당이 순례자를 위한 휴식처도 운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진 상태. 나바라 수력 전기 에너지 회사에서 40개의 풍차와 사진에서 보이는 순례자 형상을 1994년에 설치했다. 이 풍차에서 발생되는 전기에너지는 연간 20메가와트로 팜플로냐에 공급된다고 한다. 까미노 관련 서적에서는 "나바라 경치의 중세시대 기운을 효율적으로 망치는 풍차 설치... " 라고 이 대목에서 언급했다. 자연 에너지를 이용하여 전기를 공급하는 것은 효율적인 일이나, 순례자에겐 순례길의 역사와 관련된 장소가 사라진 건 당연 아쉬운 일이다.
 

산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풍차들.



가까이에서 보는 풍차의 날개는 참 날카롭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내가 풍차까지 날아가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 아하하하...;; 어떻게 이런 풍차를 높은 곳에 세울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이곳까지 온 기념으로 셀카도 찍어보고.(그래서 얼굴만 대빵 크게 나왔다는...)
여기까지 온 건 좋았는데, 다음의 까미노 지표가 안내한 길은... 두둥...!!! 급경사길!!!!!!!

오 마이 갓!!! 무섭다 .. 후덜덜덜. 라라소냐 가는 길에 만난 내리막길도 힘든 코스였지만
이건 뭐, 중간에 돌멩이 하나없는 대머리 같은 내리막길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피하고 싶은 험한 코스이지만,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_-;;
지금 여기서 쌀푸대만 찾을 수 있다면은, 쌀푸대를 바닥에 깔고 내려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0% 확률의 소망일뿐. (아니면 배낭을 커버로 씌운 다음에 배낭을 깔고 내려갈까 ?-_-? 하는 고민도 했다는 거. 물론 아주 잠깐,)

어쩔수 없다! 다른 건 다 못 믿어도 과학적으로 증명된 "중력의 법칙" 믿어보자.
지금 내가 가진 것. 몸무게와 배낭의 무게. 요놈들을 믿어보자고.
걸어서 못 가면 어쩌겠어. 기어서라도 내려가야지!
예전에 통영 소매물도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등대섬으로 가려고 한참을 올라갔더니 지금과 같은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만났었다. 내려갈 자신이 없어서 한참 고민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안되겠다. 기어서라도 내려가자.' 해서 땀을 빨빨 흘리며 힘들게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중간에 힘들어서 털썩 앉아 셀카를 찍어 애써웃는 내 표정을 보노라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자,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배낭 끈을 잡아매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조심히,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저~~ 기 보이는 까미노 표지


작은 꽃들이 피어있어, 내려오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ㅎㅎ



(사람은 참 신기한 기억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분명, 내리막 길을 보고 식겁해서 간신히 한 발 내딛은 건 기억하겠는데,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내려 갈 때 상황을 자세히 적어보려니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그 곳을 내려왔는데... 눈 감고 내려온 건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천천히 내려오다가 풀밭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내려오지 않았나 가설을 세워본다. 까미노를 가게 된다면 꼭 스틱을 준비해가야한다.ㅎㅎ 특히나 나처럼 '내리막길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다행히도 어설프게 내려오는 내 뒷모습을 바라본 이가 없어 므흣하다. 별탈 없이 내려왔다!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T^T!!!)

길을 따라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섰다. 시골이라 조용하다.
창가에 고양이 한마리가 나를 반긴다.

Uterga 마을.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바에 가서 커피한잔 주문하고는 바의 스탬프를 크리덴시알에 찍었다. 수많은 스탬프들로 이 공간들을 다 채워야지! 
혹시나 마르코스가 바에 올까 싶었는데 오지 않았다. 이 정도 시간이면 나보다 훨씬 잘 걷는 마르코스가 나를 충분히 따라잡고도 남았을텐데.


우떼르가의 바 알베르게 & 레스토랑을 같이 운영한다.


조용한 시골. 참 한적하다. 유럽의 시골이나, 한국의 시골이나 마찬가지로구나.
문득 농활을 생각나게 했다.

여기에 막걸리만 세워놓으면 딱 한국 농촌의 느낌!!


봄농활 때 고추밭에 비닐 씌우던게 생각난다. 고추 일일이 심었던 거며. 말뚝 박았던 것까지!! 나무 말뚝, 쇠 말뚝을 큰 망치로 쾅쾅.
처음 해보는 탓인지, 갑자기 무리해서인지 다음날 온몸이 쑤셨던 기억도 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추는 슈퍼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거였는데, '고추가 길러지기까지 참 많은 과정들이 있구나, 농부의 피와 땀과 정성으로 길러지는 농작물을 함부로 생각해선 안되겠다' 는 교훈과 생명을 키우는 땅과 바람과 햇살과 마른 목을 축여주는 물의 소중함을 몸소 배웠던 시간들. 갑자기 막걸리가 그리워진다. 달짝지근한 옥수수 막걸리와 밤 막걸리!!

산티아고까지 747km


가끔 마주치면 반가운 표지. "산티아고까지 00km"
'아, 내가 길을 제대로 걷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는 이정표.

연두색 풀잎 사이로 빨간 점 몇 개. 저 멀리에는 더 많은 빨간꽃들이 피었네.


한국에서도 흔히 보던 꽃나무를 보니 반갑다.
(하지만 이름은 모른다.;)

길에서 반가운 사람 만났음 좋겠건만.
풀과 꽃만 실컷 구경하며 걷는다.








여행 오기 전, 후배가 준 조그마한 눈사람 오카리나가 문득 생각이나 찾아 입에 물었다.

우선 음계연습부터.
정확한 연주법을 몰라, 여러번 시도 끝에~
얼핏 도레미파솔라시도 성공!

흠흠 거리며 부르길 좋아하는
동요 '뭉게구름' 을 연주해본다.

♩♪저 푸른 하늘~ 벗 삼아~ 훨훨 날아 가리리라~ ♬





넓은 들판, 새가 지저귀는 소리,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


산 꼭대기에 풍차!! 마을을 보니 반갑다. 반갑다! 아무개야!


혼자 놀기에도 지쳐갈 때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서 누군가 오고 있다. 노라다! 함께 걷고 싶어서 노라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노라 ^ㅅ ^


"너도 한 장 찍어줄께" 해서 어설픈 자세를.. 무튼 기분이 좋아서 얼굴도 활짝 몸도 활짝!~


포도밭~


노라에게 오카리나 연주를 들려주니, 소리가 예쁘다고 좋아해준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up!
머지 않아 그 다음 마을인 Obanos 에 도착했다.

Obanos 의 성당, Parroquia de San Juan Bautista


Cizur Menor에서 만났던 스페인 형제.


어제 만났던 스페인 형제를 발견! 카메라를 들이대니 재밌는 설정을 보여준다. 하하.


성당 앞 광장의 십자가에 뭔가가 걸려있다. 꽃이 시든 건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해골이 사람 형상으로 십자가에 걸려있다. 무슨 사연일까.

해골 모양이 십자가에 걸려있어서 섬뜩했다.


십자가에 걸려있는 괴상한 모양이 마음에 걸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고요했다. 오른쪽 구석에 책상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 한분을 발견했다.
나를 보시더니 생긋 웃어주신다. 한국에 왔다고 하니 반가워하셨다.
교회 방명록에 이름과 국적을 적고, 크리데신알에 스탬프를 받았다. 스페인어를 잘 할 수 있었다면 십자가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십자가는 왜 저렇게 해놨을까나?


성당 안으로 들어와서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던 성당 안.


Obanos, 이 마을에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다. 몇 백년 전 순례길을 걷던 아키텐의 공작 기예르모와 그의 여동생 펠리시아에 관한 이야기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펠리시아 공주는 궁전으로 돌아갈 것을 거부하고 종교적 은둔자가 될 것을 결심한다. 기예르모 공작은 무력으로 동생을 데리고 가려했지만 거절당하자, 그녀를 칼로 찔러 죽였다. 동생을 살해한 죄책감에 기예르모 공작은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과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Obanos, 이 곳에 머물기를 결심하고 평생을 동생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지냈다는 이야기. 이 곳 성당에 기예르모 공작의 두 개골이 은색 성물함에 놓여있단다.  


길을 걷다 발견한 전단지.
반갑다. LG. ㅋㅋ

다음 마을에 가까워질때쯤,  두 명의 순례자를 만났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고 했는데, 한 분이 내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하니, 당신은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단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신문에서 관련 기사도 유심히 보신다고... 전 대통령 성까지도 알고 계신다. 오~~~!! 왠만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유럽사람이 한국에 대해 이렇게 잘 알겠나 싶었는데,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길.

"딸이 하나 있는데, 한국에서 입양했단다. "

아... 그래서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구나. 한국인을 입양했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만나다니. 신기하다. 아참, 이분들은 노르웨이에서 오셨다. "테디" & "베어" 라고 성함을 알려주셨다. 노르웨이 발음이 있는 거 같았는데, 내가 외우기 쉽게 가르쳐주신 듯 하다. ㅎㅎ; 한국인을 입양한 분이 테디, 그리고 친구인 베어 할아버지.

테디 할아버지가 '아리랑' 에 대한 언급을 하시길래, 번뜩 눈사람 오카리나가 생각났다. 오늘 속성으로 익힌 오카리나지만 아리랑을 연주해 들려드렸다. 허밍으로 따라 부르시는 테디. 무척 좋아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ㅅ ^
 

드디어 Puente la reina 에 도착!! 맨 왼쪽에 베어, 가운데에 테디 할아버지 ^^


드디어 마을에 도착!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편에 알베르게가 있었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푸려는데 마르코스를 만났다.
"Hey!!!! "
마르코스는 내게 왜 이리 늦게 왔냐고 물어본다.
자신은 이미 샤워와 빨래를 끝냈단다.
헐...

이제 곧 시에스타가 시작 된다. (해가 뜨거운 낮 동안 상점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는 스페인의 관습. 약 1시나 2시경부터 시작하여 서너시간정도 쉰다. 마르코스가 시에스타를 지독히도 싫어했던 게 기억난다. "Spanish are so lazy!!" 라며... ㅎㅎ)

슈퍼마켓 문이 닫기 전에 어서 식량을 구비해야겠다!! 얼릉 슈퍼로 가서 먹을 걸 고르는데 아까 헤어졌던 노라를 만났다. 당연히 이 곳에서 머물 줄 알았는데 다음 마을까지 더 가기로 했단다. 그려. See you!

알베르게로 돌아와 씻고 나서 쉬는데 마르코스가 마을을 함께 둘러보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물론! 함께 갑시당!
어제 무리하게 걸은 탓에(마르코스에게 무리였을리는 없지만 -,.-;) 발바닥에 물집에 생겼단다. 나는 발목과 근육. 그리고 발바닥이 아프다. 그래도 참을 만 하다~

이 마을의 이름은 Puente la reina. 스페인어로 'Puente' 는 다리를 뜻한다. 이 마을엔 11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다리로 유명하다. 마을의 길과 건물들이 오래되어 보인다. 옛 마을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동네랄까. '오늘 이 곳에서 머물기로 한 건 잘한거야!'  나는 이 곳이 무척 마음에 든다. 

안녕! 꼬마야! =)


 길을 따라 쭈욱 가니 황토빛 강물이 보이고 다리가 보인다. 둥근 아치 모양이 예쁘다. 세월의 흔적은 돌에 고스란이 묻어났다.

다리위에서, 마르코스.


11세기에 지어진 다리! 정말 튼튼해보인다 ^^


강 건너편에 양떼들.


 호기심이 많은 마르코스는 다리에 대해 궁금했던지 근처의 관광안내소에 가서 열심히 물어본다. 까미노 기념품을 팔길래 나는 엽서 두 장과 자그마한 까미노 악세사리를 샀다.

알베르게에서 만난 스페인 부부.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 같은 방에서 뵌 스페인 부부님을 만났다. 이 분들은 까미노가 세번째라나, 나의 짧은 스페인어로 Usted. Camino Primero(첫번째)? Segundo(두번째)? 이렇게 물어봤더니 내가 못알아듣자 손가락으로 표시해주셨다. 뭐라고 내게 계속 말씀하셨는데, Libro(책) 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아마 책을 쓰셨다는 얘기 인듯하다. 난 대단하시다고 엄지를 치켜들었었다. ㅎㅎ
 


심상치 않은 자전거 발견!!


교회가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지나치는데 노란색 자전거를 발견했다. 매트며, 침낭이며, 저런 걸 가지고 다닐만한 사람은 이 길에선 순례자들 뿐인데. 자전거가 좀 특이하다. 누굴까? 저 자전거의 주인은? 마르코스와 나는 궁금해하면서 눈여겨 보았다.


교회 안을 둘러볼 수 없어서 외관만 몇장 사진으로 담아냈다.


마르코스가 갑자기 전화하러 가고 싶다면서 따라올거냐고 물었다. 뭐, 마땅히 할 일도 없는데. "It's OK." 전화박스를 찾아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발견! 마르코스는 브라질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지나는 교회 앞마당. 오, 그 특이한 자전거가 아직도 있다! 저 사람이 노란 자전거 주인공인가보다! 아... 그런데... 그냥 지나치기엔 마르코스나 나나 무척 호기심이 일었다. 마르코스가 말을 걸어보자고 해서 자전거 주인에게 다가갔다. 그의 이름은 루까. 이탈리아 사람이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루까와 나


자전거가 보통의 것과 다른 이유가 있었다. 루까가 사용하기 쉽게 개조된 것... 까미노 순례를 다양한 사람들이 한다는 건 알았지만, 루까는 정말 특별하다. '루까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장애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초면에 실례라 생각되어 물어보지 못했다. 내가 루까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다. 이 자전거를 끌고 (페달이 없어서 자전거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 도로를 다니는 것도 위험한 일일텐데 말이다. 들어보니, 루까는 까미노 순례길이 처음이 아닌 것. 그러면서 농담으로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파울로 코엘료가 까미노를 걸은 해에 나도 까미노를 경험하고 책을 냈는데, 파울로 코엘료는 성공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어!" 웃으면서 얘기하는 루까. 나와 마르코스도 덩달아 함께 웃었다. 이것저것 더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루까는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길을 가야한다. 조심히 가라고, 까미노를 잘하라고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Buen Camino!¨

한동안 마르코스와 나는 말없이 잠자코 걸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루까를 만난 나의 마음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어서 속으로 감탄사만 연발했다. 나 뿐 아니라, 루까의 순례를 목격하는 사람 모두들 큰 감동을 받겠지?  내가 만약 루까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그처럼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이렇게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르코스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 까미노에 대해서 불평할 수 없어. 루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 같아. 우리의 정신의 힘은 참 놀라워. 우린 단지 그 힘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 아는게 필요해."

"그래, 맞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홀로 명쾌하게 정리할 수 없었던 감동을 마르코스가 멋지게 해준다. 루까는 자신의 불편함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기보단, 조건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멋진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동안 나는 사소한 것을 크게 확대하여, 작은 불편, 불운을 세상에 큰 시련인냥 여기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나. 나의 어리숙함에 대한 부끄러움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한편, 이런 소중한 만남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순례길에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테라스를 화분으로 장식한 길가의 집.


알베르게에 돌아오니, 순례자들로 북적북적하다. 리셉션에선 호스피탈레로가 발에 물집이 생긴 순례자를 치료해준다. 부엌이 있는 알베르게라 식료품을 사와 직접 요리하는 순례자들도 보였다. 낮에 만났던 테디 베어 할아버지가 차를 마시고 계셨다. 베어 할아버지가 내게도 차를 권해주셨다.  

노르웨이에서 온 테디(왼쪽), 베어(오른쪽)


테디 할아버지께 궁금한게 많아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테디 할아버지는 77년에 한국을 방문하셨단다. 우와. 77년이면, 아직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테디는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계신다. 한국의 음식이나 문화 등... 나는 테디 부부가 어떻게 한국인을 입양할 생각을 하셨는지에 대해 여쭤보았다. 그 당시, 노르웨이에서 가난한 나라의 고아들을 입양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테디부부는 한국의 아이를 선택한 것이다. 테디는 따님의 한국식 이름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계셨다. 
까미노를 걷는 도중 테디의 아내분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애도를 표했다. 노르웨이로 돌아가서 장례를 치르고, 순례를 그만 둔 지점에 다시 돌아와 지금까지 걷고 있는 계신것이다. 대화 도중, 마르코스가 지나가길래, 테디 베어 할아버지를 소개했다. 

오늘 저녁은 마을 식당을 추천 받아온 마르코스와 함께 했다. 내일 또 힘을 내서 걸으려면 저녁에 푸짐하게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 마르코스의 지론. 저녁을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부엌에서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준비해서 먹는다. 시끌벅적, 즐거운 분위기... 음... 부럽다...! 나도 다음번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식사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사람들이 걷는 이 길, 까미노...
내일은 또 어떤 만남이 있을까? 무슨 일이 생길까? 벌써부터 내일이 기대된다.  
그나저나 루까는 어디쯤 가서 쉬고 있는 걸까?


Cizur menor - Uterga - Obanos - Puente la reina = 18.8km
숙소 5유로, 커피 1.5유로, 인터넷 1유로, 식사 8유로, 엽서 5.4유로, 요거트 1.2유로, 기념품 3.5유로 = 25.6유로


일주일이 지나서야 글을 올리게 되네요. ^^; 루까와의 만남을 글로 정리하는데, 쉽게 써지지 않더라구요. 테디 할아버지 이야기도요... 몇 문장으로 감동을 적어내기엔 부족하지만, 굳이 제가 글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루까의 이야기가 제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을 전해주었으면 합니다. (저의 과한 욕심일런지...ㅋㅋ) 아참, 테디 & 베어님의 호칭을 아저씨라 해야할지, 할아버지라 해야할지 애매했는데... '할아버지' 라고 붙였습니다. 영어로 대화할 때 '할아버지, 아저씨' 이런 호칭 없이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제가 굳이 높임 호칭을 붙이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ㅅ=;; 두분의 연세가 55세, 63세 이렇게 되십니다. 아참. 두분께서 사돈 지간이시면서도 친구랍니다 ^^;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 많으니깐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ㅎㅎ


By Yild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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